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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 (통과의례 - 9)
level.6 지오니
  • 2016-01-06 23: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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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행들은 모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고한솔은 밍키들의 무리를 완전히 도륙 내버렸다. 그것도 앞에 선 남자 셋보다, 수배에 달하는 밍키들을 해치운 것이다. 남성들은 그 모습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자신들에게 따라 하라고 하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깔끔한 움직임이다. 

 

고한솔은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사실 고한솔은 고민을 많이 했다. 밍키들을 처리하면서 이 일행들을 모조리 처리할까, 하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일단 만나고 결정 하자였다. 이가인으로서는 싸움에 싸 자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위장을 한다면 티도 안날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행이 해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고, 고한솔은 문득 자신의 앞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허유리였다. 

 

그 순간 살심이 치솟았다. 슬며시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허유리에게 죽은 사람들만 수십 명이 넘었다. 그 분노에 검을 들까 했지만, 그 허유리는 내 손에 처형당했다. 그것도 죽기 전까지 부랑자들에게 돌려지며 괴로움을 주었으면, 나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오히려 이 허유리는, 그 허유리와는 아직은 다른 별개의 존재였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자신의 뒤에서 이가인이 수줍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남자들은 헤벌쭉하며 웃었지만, 옆에서 도끼눈을 든 체 보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오빠!" 

 

 "구승환!" 

 

 "험험…." 

 

그중 둘은 찔리는 게 있는지, 점 짓 모른 체 했다. 구승환이라 불린 남자는 허유리의 손에, 귀를 잡힌 체 어디론가 끌려나갔다. 

 

 "아아아악!" 

 

 "저 여자가 눈이 들어와!" 

 

아무래도 구승환이란, 남자는 잡혀 살 운명인 듯싶다. 한편, 다른 남자도 안절부절못했다. 

 

 "하, 한나야." 

 

 "말 걸지 마." 

 

한나라 불린 여자는 쌀쌀맞은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눈이 가게 생겼어." 

 

 "잘못했어, 한나야." 

 

남자는 손이 발이되도록 빌었다. 임한나는 그 모습에 흥하며 고개를 돌렸다. 실로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김덕필은 그 모습에 쪽팔린지 헛기침만 했다. 사실, 그도 좀 부럽기는 했다. 

 

어찌나 운이 좋은지, 저 두 커플은 여기에 떨어지자마자 김덕필과 만났다. 비록 며칠을 같이 지내기는 했지만, 김덕필은 그들의 커플 행각에 염장이 너무 많이 찔려, 감각이 없는듯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김덕필의 마음속에는 위안이 되었다. 

 

 '아윽, 나도 원래 내 애인이 있는데….' 

 

그렇지만 그 애인은 여기에 없고, 저 멀리 지구에 있었다. 연인이 이런 상황에 같이 안 온 것이 다행이었지만, 왠지 애정어린 두 커플의 행각에 절로 부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덕필은 염장 찔린 간을 부여잡은 체, 악수를 건넸다. 

 

 "어찌 됐건 고맙소. 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 

 

고한솔은 과묵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비록 고한솔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들은 것마냥 김덕필은 유쾌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하하, 과묵한 사람이군, 난 김덕필이라합니다." 

 

 "……고한솔이다." 

 

 "고한솔 씨 되시는군요." 

 

김덕필은 호쾌하게 웃었다. 

 

 "전 이가인이라고 해요." 

 

 "오, 가인 씨, 반갑습니다." 

 

김덕필은 반가워하며 손을 뻗었다. 가인도 그에 악수하며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김덕필은, 왠지 자신의 뒤통수가 따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서슬 퍼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한솔이 보였다. 김덕필은 정말이지 마음이 아팠다. 

 

 '여기저기 다 커플이야!' 

 

그렇게 속으로 울부짖으며, 근처 나무에서 절망했다. 잠시 절망하던 그는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영, 담배가 쓰다." 

 

왠지 그는 속으로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감추며 김덕필은 담배를 건네었다. 

 

 "담배, 피십니까?" 

 

고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김덕필은 연신 담배를 들이마셨다. 왠지 오늘따라 담배가 유달리 쓴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 

 

 

두 일행은 자연스럽게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까 임한나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던 남자의 이름은, 임현수. 임한나의 친남매였다. 

 

 '친남매끼리 연인도 되는 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마치 남매 이상, 연인 미만과도 같은 행동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됐건, 두 일행이 함께다니는 것은 각자의 목적이 있었다. 

 

고한솔로서는 일단은 고민하고 있었다. 

 

 '저들을 죽여야 하나….' 

 

진지한 고민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는 천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여차하면 부랑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부랑자가 되어 다시 천사들을 죽이고, 제로 코드를 탈환한다. 그런 생각도 머릿속에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그는 이전에 만난 유현아를 바로 죽였어야 됐다. 

 

그 괴리감에 고한솔은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아갔다. 

 

한편, 김덕필 일행으로서는 그들의 일행과 함께 다니는 것이 이득이었다. 

 

사실 김덕필 일행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셋이었다. 여자 둘은 아무래도 짐덩이 밖에 되지 않았다. 사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여자들은 현대에서 군대는커녕 운동이라고는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허유리는 여자치고 날렵한 몸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천성적인 몸치인지라 오히려 무기를 들면 일행에게 위협이 되었다. 

 

다른 여인인, 임한나는 생각보다 큰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속설에 의하면, 가슴이 큰 여자는 운동을 못 하며, 머리가 나쁘다는 말이 있었지만, 임한나의 머리는 생각보다 좋은듯했다. 이제까지 관찰한 결과, 몸놀림이 나쁜 것 같지는 않지만, 저 큰 가슴이 문제였다. 

 

 "…지이이이." 

 

이가인은 가늘게 실눈을 뜨며, 고한솔을 보았다. 

 

왠지 모르게 내 남자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남자?' 

 

갑자기 내 남자라는 생각에 갸웃했다. 이가인은 고한솔과 만난 지 3일밖에 안되었다. 물론 3일 지낸 것이, 몇 년을 지낸 것보다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물론 고한솔이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주었다는 사실에 고맙기는 했지만, 연애감정은 싹트지 않았다. 

 

그 생각에 고한솔이 만약 자신의 애인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사람에게 차가운 도시 남자이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한 남자. 

 

그런 망상을 떠오르자, 이가인의 얼굴은 붉게 물들여졌다. 혹시 누가 자기 생각을 알까 봐 주위를 둘러보자, 잔뜩 눈에 빛을 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허유리가 있었다. 

 

 '후훗.' 

 

마치 내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 끄덕이는 그 모습에 얼굴이 하얗게 물들였다. 이가인은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허유리에게 다가갔다. 

 

 "왜, 왜 웃으시죠?" 

 

 "그냥요."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눈은 잔뜩 장난스러운 눈빛이었다. 

 

 '알아차렸구나.' 

 

이가인은 그 모습에 조용히 딜을 했다. 

 

 "제가 언니로 모실게요." 

 

 "콜!" 

 

둘은 그렇게 딜했다. 

 

고한솔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여자들이란, 전에도 그랬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 

 

 

밤이 천천히 지자, 일행은 노숙 준비를 했다. 

 

남자들은 모닥불을 집히고, 여자들은 간단한 저녁 준비를 하였다. 고한솔은 노숙을 준비하는 그들의 뒤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 마시며, 손잡이를 들었다. 지금이라면 이자들을 단번에 벨 수 있다. 무방비한 기회는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제는 확고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랑자가 되지 않겠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정말 엄청난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김정은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그런 정도의 고민이었다. 

 

그럼 천사들을 증오하지 않는가? 물어보면 그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그에게 있어서 천사들은 증오의 존재이다. 하지만 천사들이 증오스럽기는 해도, 아무런 죄 없는 사용자들을 해칠 수는 없었다. 그는 그들 일행과 다니며 조금씩 생각이 변했다. 아니, 변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기억하는 허유리는 잔인하고, 악독하며, 악바리 넘치는 여인이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 부랑자들이었고,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를 죽이지 않는다.

 

왜냐면, 잘못은 우리에게 있었다. 

 

사실 부랑자들 상당수는 악질적인 자들이 많았다. 악질적으로 살아왔기에, 홀플레인에 와서도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그들이 악하더라도 통제를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컸다.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부랑자를 벗어나려고 한다. 다수가 악이면, 소수의 선은 그에 묻히고 만다. 그리고 소수의 선은 오히려 이상한 행동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비록 부랑자가 되어 그 끝까지 도달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지만, 그 과정은 후회 넘치는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복제술사 하승우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것을 변명하는 것은 추악한 일이다. 살인이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없듯 그것은 변명거리는 못됬다. 

 

고한솔은 고민하던 것을 털어놓았다. 부랑자들도 진절머리가 났고, 천사들도 진절머리가 났다. 

 

 '제로 코드에 관심을 끌 것이다.' 

 

세상이 흘러가는 데로 지켜볼 것이다. 나의 소중한 이들을 헤치지 않는 이상, 세상과는 관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고한솔은 생각했다. 

 

 "……." 

 

누군가는 그 생각이 이기적이라 할지도 모른다. 나와 관계되지 않았기에, 무시하고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이다. 하지만 고한솔은 거기에 만족한다. 지쳤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구와 마주한다는 것은,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고한솔은 천천히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아직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끈끈한 결속을 자랑하며 하루하루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문득, 그 모습이 부러웠다. 

 

부랑자들은 필요에 의해 만나고, 필요에 의해 집단을 구성하며, 필요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린다. 이것이 규칙이었고, 그런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여야 했다. 

 

비정한 사회다. 

 

비정했기 때문에, 효율적이었고, 효율적인 만큼 사람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일개 부랑자로 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가인은 오래간만에 여자들과 만나 잔뜩 수다를 떨었다.

 

 

 "어머, 그랬어?" 

 

 "네, 그때 정말이지 놀랬다니까요." 

 

이가인은 자신이 밍키들에게 납치당했던 일을 풀어놓았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그가 마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나는 것 있죠?" 

 

 "우와, 굉장하구나." 

 

 "언니도 그 모습을 못 보았으면 말을 마세요." 

 

굉장하다는 듯이 말하는 가인의 모습에, 허유리는 부러워했다. 자신의 연인인, 구승환은 푼수 떼기였다. 진중한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실실 쪼개며 장난치기 일쑤였다. 

 

 '언제쯤 나도 승환이에게 진지한 모습을 볼까.' 

 

허유리는 작게나마 생각했다. 진지하게 자신을 대하며, 아주 차도남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금세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무리." 

 

전혀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이가인과 여인들은, 모닥불이 꺼져라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한솔을 제외한 남자들은 그 모습에 웃음기가 절로 나왔다. 

 

 "형님, 그래도 저렇게 있으니까, 모델들 같지 않습니까?" 

 

 "내 생각도 그러하다." 

 

 "그래도 그중에서 저희 유리가 제일 예쁘지 않습니까?" 

 

구승환은 주책없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임현수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반박했다. 

 

 "아니, 그건 저희 한나가 젤 예쁩니다." 

 

둘이 그렇게 논쟁을 벌이려는 찰나, 저 멀리서 한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가인." 

 

저 멀리서 고한솔이 한마디 했다. 나머지 셋은 반박하려고 했지만, 서슬 퍼런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매력의 승리가 아니라, 무력의 승리였다. 

level.6 사용자 지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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