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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3 책읽는녀석
  • 2016-03-06 19:43:29
  • 조회수 6194
  • 추천 4
  • 댓글 7
-그 기억은 내것이 아니므로.-

수현은, 아주, 아주 잠깐동안, 꿈을 꾸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무엇을 이야기 해 주었는지, 무의식적으로 꿈을 기억으로 끌어올리는 수현의 눈에는 여러 감정이 산산히 겹쳐있었다.

주변이 조용한것을 보아 아직 다들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 수현은 끄응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곤 생각보다 피부를 에는 공기에,

 발에 걸리는 얇은 이불을 어께언저리까지 끌어올려 몸에 둘렀다.

그러고는 제 입에서 새나오는 입김을 멍하니 쳐다보며 꿈에서 보았던 허상을 곱씹었다.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먼지가 쓰이고 저 멀리 숨겨져 존재조차 잊고말았던, 소중하고 소중했으나, 이제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보지 못했던 기억들 중 하나.

 

그것은,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것으로 시작되었다.

 

 

 

*

 

 

 

그녀는 청아하다던가 구슬이 굴러간다던가 하는 목소리와곤 거리가 아주 먼 말투와

헤어지는 장면에는 어울리지 않은 장난끼가 가득 묻혀진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잘 다녀 오라며, 가끔 구경하러 가겠다며...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엔 떨림이 가득했고 붉어진 얼굴엔 아쉬움과 걱정이 새어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그것을 감추려는 듯,

감정과 어울리지 않는 환한 표정으로 큰소리로 안녕을 소리쳤다.

 

그것을 떠올리는 사이에, 수현의 입에는 저도 모르게 얕은 미소가 살짝 걸려졌다.

 

흐릿한 기억마저를 돌이켜 보면, 예전의 나는 하여간 이해가 안가는 구석이 많았다.

 

어릴시절 길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걸곤 금방 친해져 수다를 떨거나,

벤치에서 돈을 얼마씩 걸고 장기를 두는 노인들에게 끼어들어 한수 배워본다던가,

길가의 아이들과 합류해 삶에 대한 고찰을 읆조리거나,

오늘같은 날씨에 내복차림으로 집 문밖을 기웃기웃 해본다던가,

대학생이 다 되가지곤 술에 취해 리코더로 장기자랑을 한다던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꽤나 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버렸다던가.

 

 

당시 유현이 내게 그녀의 험담같은것을 꺼냈을때인데,

걔는 좀 아니다. 너의 격에 맞지 않다. 너를 위함이다라느니 하는 어조로 시작한 유현의 말은 나의 고함과 윽박지름으로 끝나게 되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 사실 유현의 말대로 그녀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새처럼 빠르게 쏴대는 말과 개그. 세간에서 평균이라 불려지는 외모. 나쁘진 않았으나 아주 좋다고도 할 수 없던 학점.

같이 다니던 대학의 뒷면에서는 나와 비교를 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2년이나 되는 군 복무 도중에도,

 

그녀는 몇장씩이나 되는 편지로 안부를 전했고

자잘한 기념일 선물로 기다림을 전했고 소소한 장난거리로 웃음을 전했고

가끔 얼굴을 비춰 사랑을 전했다.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또 고마워서, 그때만 해도 난 그녀를 잊으리란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의 시간을 훌쩍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군역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 행복함과 기대에 두근거리며 기차에 발을 디뎠을때,

나는 10년간 그녀와의 감정을 잃었다.

그리고 5년간 그녀를 잊었다.

 

내가 지구의 '김수현'을 받아들였을때 나는... 그녀가...너무, 멀게 느껴지고 말아서...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을 찾고 말아서...

그녀와의 두근거림을

행복을

즐거움을

추억을

싸움과 화해를

미래를 향하는 노래를

기쁨의 연락을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지난 이야기라며, 이젠 잊혀 마땅한 생각이라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것들을 죄다...

 

 

수현에게 잠시 머물렀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내 슬픔과 미안함... 그리움같은 감정이 깊게 자리잡았으며 이내 자괴감에 사로잡혀버렸다.

 

 

 

아아... 미안해... 네게 할 말이 없어... 넌 나를 기다려주었는데, 나는 너를 하루만에 잊고 말았어...

지금의 나는, 변명할 여지도 없어서, 나 자신이 비참해. 아마 내가 알던 너라면,

이 녀석이 웬일이냐며 되려 나를 걱정하거나, 내가 없으니 이 모양 이 꼴이라며 있을때 잘하라며 놀렸을테지.

 

그래, 내가 입영통지서를 받을때도 너는 그랬어.

아쉬움을 전혀 내색하지 않은채, 장난 섞인 말을 주절거렸지.

그때는 얼마나 얄미웠던지... 하하..

 

 

 

...아아. 이것은 좋지 않다고, 빨리 잊자고 수현은 생각했다.

 

추억의 기쁨과 동시에 슬픔과 미련이 그에게 밀려왔기 때문에.

그리고 표정을 굳혔다가 풀다가 하며 감정을 옆으로 꾹꾹 눌러 밀고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모두를 깨운 뒤 식사를 준비했다.

그날따라 끽끽대는 문의 경첩소리는 오늘 수현의 심란함을 대변하는듯 했다.

 

 

*

 

 

"......저기... 수현씨... ?"

연주가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의 정적을 조심스레 깨트...리려 했으나, 그것은 실패하여 안그래도 어색한 기운이 더더욱 어색해지고 말았다.

어떤 사람이라도, 지금 수현이 매우 이상하다는 말엔 공감 할 것이다.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없는게 더 나으리라 생각될 정도의 굳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한술 더떠서 아무 음식도 없는 숟가락을 꾹꾹 씹어댔다.

 

유정이 평소와 같이 수현에게 무언갈 부탁했을때도 무반응.

한별이 계단을 내려오며 답지 않게 넘어졌을때도 무반응.

세라프가 조심히 건드려봐도 무반응.

심지어 소림이 작게 칭얼대도 무반응이었다.

 

너덧명의 수현이 바쁘게 이리저리 옮겨다니던것에 익숙해진 그들은 예고없이 일어난 사건에 대처를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교환을 하다가 이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부엌에서 얼마 떨어져 그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갑자기 왜저래요??!?'

'어.. 어제 오늘사이 무슨일이 있던거지...?'

'설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건 아니겠죠...?'

'그럴 가능성은...'

'그때도 이렇진 않았잖아요!!'

'엇! 갑자기 일어났어요, 쉿!'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에 의문이 이어졌지만, 그 당사자는 이상하리만치 눈치를 못챈 채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수현은 도무지뭔가 시도할 기력이 나질 않았다. 가슴께가 답답하고 머리는 지끈거렸고 눈 앞이 일렁였으며, 목 언저리에 구토감이 일었다.

그대로 터벅거리며 침대에 돌아가, 몸을 맡겼다.

그리곤 후회했다.

묻어두지 말껄.

묻어둘꺼면, 다시 꺼내지 말껄.

잊었던 감정히 이렇게 생생하게 밀려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

 

 

걱정을 수군거리던 여자들의 무리중에서 한명이, 혼란을 틈타 슬그머니 자리를 나왔다.

 

'수현, 설마...'

 

... 아니야. 그는 합리적이다.

어쩌면 나 이상으로.

마치 주문처럼 그것을 중얼거리던 세라프는 안좋은 예감을 떨쳐내려고 했으나

, 자꾸만 위화감에 휩쓸려 실패했다.

 

이것은 그답지 않다고. 마음만 먹으면 [제 3의 눈]을 발동하여 모든것을 통찰하고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이다

 

. '오늘 수현은... 수현답지 않아... 왜...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수현의 방 앞까지 다다랐다.

 

들어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들어간다면, 무슨말을 해야할지.

 

그런 고민을 하던 세라프는 순간,

방안에서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에 놀라 문을 벌컥 열었다.

 

그 소리에 수현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고,

세라프는 답지 않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어 침대에 쿡 앉고는 엎어져있는 수현을 불렀다.

 

"수현"

 

"..."

 

"김수현"

 

"..."

 

"사용자 김수현."

 

"어......"

 

수현이 익숙한 음성과 그것이 뇌까리는 여섯글자의 부름에 조용히 대답하자,

세라프는 수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몇초만에 판단할 수 있었다.

오직,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래서, 세라프는 입을 열었다.

 

"수현,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수현은 '김수현' 에 매달릴 의무가 없습니다."

 

"..."

 

대답이 다시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세라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매달릴 필요도 없고요."

 

"..."

 

"수현.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사용자 김수현'의 삶이 아닙니다. 당신은 머리가 좋으니, 금방 이해 하시리라 생각 합니다."

'... 그리고 이젠, 과거의 '사용자 김수현'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죠...'

 

 

 

 

 

...!

 

 

 

 

 

세라프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라프의 눈은 반대로, 반쯤 감겼지만 말이다.

 

 

... 이윽고 수현은 침대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 그래."

 

"이것은, 내것이 아니야." 그 말이 끝난 직후,

수현은 머리가 시원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으리라.

 

눈에는 생기가 돌아왔고, 입에는 다시금 미소가 그려졌다.

다만 다른것은, 흘러내리는 눈물.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 주륵주륵 흘러내려갔다.

거기에 담긴것은 안도와 행복, 고마움과 미안함.

수현은 천천히 옆에 앉아있는 천사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로.."

 

연신 터져나오는 수현의 울음과 감사인사에 세라프는 미소를 띈 채 조용히 끄덕이며 그를 토닥였다.

 

'합리적이지 않은 수현도, 좋네요. 후후...'

 

 

 

 

 

 

 

... 이러한 분위기는 의도치 않게도,

갑자기 들이닥친 여자떼(?)들에 의해 다시 활기와 웃음으로 바뀐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세ㅡ라프!! 가장 막내주제에 선수를 치다니!!"

"...No. 수현은 불화 조장을 원치 않...."

"네 추측이 맞은거야, 세라프?"

"수현, 돌아온거예요?"

"내 말에 대답해, 세라프!!"

"밥이나 마저 먹어요. 오빠 아직..."

"불화 조장을..."

"숟가락은 어쩔까요?"

 

 

... 아니, 시끄러운것에 가까울까.

수현은 사람들이 소란스러운 사이 "하하하" 하고 웃으며 거친 손바닥으로 뺨에 남은 울음의 흔적을 밀어내었다.

고민이 툭 털어지니 지금까지의 자신이 정말 바보같아졌다.

 

마치 새드엔딩의 연애소설을 보고 엄청난 감정몰입을 한 느낌?

고민을 한건 한참인데, 세라프의 몇마디에 녹아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어.

 

'사용자 김수현'의 감정과 사랑은,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하하하.. 잘가렴. 날 한참 놀리고 간, '그녀'라는 녀석아. 

level.3 사용자 책읽는녀석

이름에 닉네임 쓰는줄 알고 MM썼는데, 본명을 적는거였어... ㅜㅠ

성별
직업
일반마법사
성향
레벨
Lv.3
경험치
690 EX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