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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Reset)
level.3 m-_-m
  • 2016-03-05 10: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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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김수현."

 

오랜만에 듣는 나직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 이제는 익숙해져서 꼭 아름답게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용자 김수현."

 

나는 결국 또 실패했다. 제어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화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폭주해 버렸다. 역시 무리였나.

처음과 끝을 알리는 이 공허한 소환의 방에 다시 오게 됐다. 의문이 드는 건 제로코드를 얻은 것도 아닌데 눈을 뜨니 이 곳에 있다.

 

"다시 한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라는거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근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마치...

 

"사용자 김수현의 요청을 재확인 하겠습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홀플레인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까?"

 

귀를 의심했다. 세라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1차에 제로코드를 얻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때 했던 말이다.

 

"사용자 김수현?"

 

생각이 많아졌다. 이건 무슨 경우지? 분명히 나는 다시 시작했었고 비참하게 실패했다.

내 아이들..이 아니라 동료들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세라프는 홀플레인의 다시 되돌리겠냐며 묻고 있었다. 오류인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세라프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며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김수현. 당신은 홀 플레인의 모든 임무를 달성했고 정상을 거머 쥔 첫번째 사용자 입니다."

 

분명 세라프는 '첫번째'라고 했다. 다음 말은 뻔했다.

 

"그토록 소망했던 제로코드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허락하는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멍청한 천사 하나가 일을 그르친 걸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다시 되돌린다고 해서 세라프가 이전처럼 약간의(?) 도움을 줄지도 미지수이고. 물론 줄 것이다.

다시 리플레이 되고 있는 이 상황만 보면 지금 눈 앞에서 '제로코드가 있는데 왜 되돌아가는 거죠? 바보같이 굴지 말고 다른 것을 말해봐요.'라고 눈빛을 쏘아대는 이 세라프는 분명히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으니까.

 

"잠깐만. 생각 좀 하고."

 

세라프는 내심 내가 다른 소원을 빌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세라프의 날개빛이 더욱 힘차게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간다고 말할까. 아니면 지구로 돌아가 정말 평범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말할까.

고민이 길어지자 세라프는 답답했는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하며 입을 달싹였다. 결국 입을 열은 세라프였다.

 

"사용자 김수현..."

 

"시간 제한이 있어?"

 

"없습니다."

 

"그럼 더 기다려 봐."

 

세라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왠지 괴롭히고 싶어졌다.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가만히 있자 세라프가 그대로 멈춰서는 '그래요. 당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빨리 입으로 말해봐요. 뭐든 들어줄테니. 그것만 빼고.'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꿈뻑였다.

 

"나는... 바꾸지 않겠어."

 

세라프는 심히 실망한 듯 했다. 알게 모르게 쾌감이 밀려왔다.

 

"사용자 김수현."

 

말리려고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세라프에게 나는 건성으로 뉘예뉘예 고개를 주억였다.

세라프는 내 행동에 조금 빈정이 상하는 듯 했지만, 어쨋거나 시간을 다시 되돌리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좋은 것들을 나열하며 설득을 했다.

이러나 저러나 제로코드의 소유자는 나고 세라프는 그 '자격'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 그리고 세라프도 알고 있다.

 

나는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 그만 좀 입을 다물라고 했다. 세라프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는 굳게 닫았다. 

무표정인지 슬픈표정인지 모르겠지만 세라프는 나를 응시하며 당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죄 없는 그 아이들을 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여하튼 나는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운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겼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다. 어쩌면 미래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국 세라프는 내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정말로 다시 돌아가는 건가. 세라프는 이전처럼 특권을 부여할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벌써 3회차인가. 세라프는 2회차로 알고 있겠지만. 세라프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용자 김수현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로딩이 끝나고 승인이 완료됐다는 말과 함께 제로코드가 발동하는 듯 했다. 두번째로 겪는 것이지만 낯설기만 하다.

허공으로 비산한 제로코드에서 뻗어나오는 맑은 빛에 의해 시야는 가려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끄긍이는 기계음과 함께 공간이 비틀어지는 듯한 느낌과 뭔가를 빠르게 지나고 있는 감각. 정말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정말로 돌아가는 것일까. 꿈은 아닐까. 환영을 본 것은 아닐까.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


사용자 김수현이 죽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1회차에 제로코드를 얻은 그였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왠지 모르게 자부했다.

화정을 골랐을 때 말리긴 했지만 사용자 김수현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거라는 약간의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화정은 그와 그의 동료들까지 집어삼켜버렸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더욱 그를 뜯어 말렸어야 했나 싶었다. 다 내 실수였다. 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대로 그런 인재를 홀플레인에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물론 천사들은 모든 사용자를 평등하게 대하고 있지만 나는 사용자 김수현을 마냥 다른 사용자들과 평등하게 바라보기 힘들었다.

 

다른 천사들과 사용자 김수현을 다시 되살릴 것이냐에 대해 토론을 했다. 물론 평등을 깨는 일이라고 반대하는 천사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흥미인 건지 진심인 건지 동의를 했다.

더이상 미룰 필요 없이 사용자 김수현을 소환했다. 몰골이 처참했다. 화정을 우습게(?) 안 대가였다.

치유와 더불어 그가 제로코드를 얻었던 그때로 시간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군복을 입고 서있는 그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까. 이전처럼 시작해야 할까.

고의적으로 다시 돌아온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혹여 다른 사용자들이 알게 되면 이는 큰 혼란을 가져 올 거란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사용자 김수현이라면 타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방법은 이전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사용자 김수현."

 

얼굴이 꿈틀대긴 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사용자 김수현. 다시 한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의 이해를 돕고자 말을 했다.

 

"사용자 김수현의 요청을 재확인 하겠습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홀플레인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까?"

 

그는 놀란 듯 했다. 물론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이내 차분해지더니 지금껏 봐왔던 그 눈빛을 띄었다.

 

"사용자 김수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아마도 다시 홀플레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할 것임이 분명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는 아직도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조금 더 힌트를 주고자 나는 입을 열었다.

 

"사용자 김수현. 당신은 홀 플레인의 모든 임무를 달성했고 정상을 거머 쥔 첫번째 사용자 입니다."

 

그는 표정의 변화없이 내 말에 집중했다. 그러다 이내 다 알고 있다는 표정. 그래 저 표정. 자만이 가득한 표정...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계속 맴돌았다.

 

"그토록 소망했던 제로코드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허락하는 안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는 잠깐만 생각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나는 차분히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홀 플레인으로 가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시간제한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없다. 그는 이내 바꾸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역시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이건 기다리느라 답답해서 내쉰 한숨이다. 사용자 김수현이 오해한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여기서 내가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지사.

나는 반대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놨다. 그는 귓등으로 들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의례일 뿐이니까.

 

"이제 그만 말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바꾸지 않아."

 

무시당하는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가 다시 홀플레인으로 돌아가는 것 만으로도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정이 뒤섞였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다시 사용자 김수현을... 아니다. 그는 스스로도 홀플레인에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나는 그렇게 약간의 죄책감 (?)을 떨쳤다.

 

나는 사용자 김수현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로코드를 실행했다. 그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좋은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제로코드 사용을 마치고 특권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사용자 김수현 앞에 잠깐 마주했다. 설명과 더불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용자 김수현. 이번엔 기필코 성공하길 바래요."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리고 세라프 네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 않아?"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말에 조금 상처를 받았지만 나는 싱긋 웃어주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를 이해하고 있는 나로써는 그저 그를 속으로 응원하는 수 밖에 없었다. 뭐 잘못먹었냐며 반감을 품을 테니.

나는 속으로 그가 성공하기를 빌고는 그의 앞에서 사라져주었다.

 

사용자 김수현. 이번엔 꼭 성공하길 바래요. 홀플레인에서 당신을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

 

화정때문에 다죽고 안타깝게여긴(?) 세라프가 다시 제로코드를 얻었던 시점으로 되돌려준 그런 얘기입니다.

 

level.3 사용자 m-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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