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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 4(完)
level.3 태사냥
  • 2016-03-27 16: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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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김수현의 기운이 느껴졌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아마 이건 능력치의 상승과는 별개로 운명이라는 것인 게 분명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멀리 원정대가 복귀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인원은 많이 줄었지만, 해밀 클랜과 이스탄텔 로우 클랜은 확실히 있었다. 그리고 앞장서고 있는 재수 없는 안현도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평소보다 맹해 보이는 게 더욱 짜증났다. 이유정은 그런 일시적인 감정을 참고, 웃음을 지어보았다. 비릿한 혈향이 웃음을 쉽게 만들어줬다.

 

" 오빠는 언제 오려나? "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게 질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본디 이유정은 치우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에 죽은 년들을 모두 태우는 수밖에 없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 때는 묘하게 붕 뜨는 기분도 느꼈다. 그리고 피가 묻은 바닥을 닦을 때도,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유정은 그것을 고양감이라 생각했다.

 

멀리 원정대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김수현이 온다는 생각에 이유정이 웃음을 감출 수 없을 때, 김수현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유정은 그 행동에 잠시 생각하다, 늘 있던 대로 보고를 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그는 신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밀 클랜과 이스탄텔 로우 클랜이 머셔너리 클랜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유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들을 반기기로 했다. 그녀는 입구로 나가 그들을 반겼다. 가장 앞에 있던 안현의 표정이 볼만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넌 분명 클랜을 나가지 않았었나? "

" 수련을 하러 잠시 외출한 거일 뿐이야.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해야겠어? "

 

안현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다른 클랜원도 마찬가지였다. 안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있다, 한숨을 쉬면서 이유정을 무시한 채 지나가려했다. 그런 태도가 이유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정은 안현을 막아섰다.

 

" 이게 무슨 짓이야? "

" 우리 사이에 뭔가 해결해야 할 게 있지 않아? "

" 퍽이나. "

 

이유정이 검을 휘둘렀다. 비상식적인 행동이었으나 안현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창으로 그 공격을 막았다. 손이 저릿해지는 공격에 안현은 놀라 이유정을 쳐다봤다. 그녀는 분명 민첩계 사용자일 것이다. 근력이라면 단연 자신이 위이다. 그런 자신이 밀릴 정도의 힘을?

 

하지만 안현은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연이어 이유정이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하하하! 악마들에게 너무 시달린 건가? 왜 이렇게 네 공격이 느리게 보이지─? "

" 큭. 어떻게 강해진 건지는 몰라도, 전과는 확실히 다르군. "

 

안현은 차분하게 그 공격들을 막았다. 하지만 이유정이 평소와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현은 이유정과 오래 지냈기에 조금이라도 그녀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었다. 이때는 이렇게 공격해온다. 그리고 이때는 이렇게 공격해온다. 이런 것들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유정의 공격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 빈틈 발견. "

" 크윽! "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묵빛으로 불길하게 빛나고 있는 이유정의 검이 상의를 스쳤다. 웬만한 고통도 참는 안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극심한 고통이 그를 덮치자, 예기치 못한 고통에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유정이 비릿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조금 묻은 피를 응시하며, 마치 그것만 바란다는 듯 한 눈빛이 안현을 당황케 했다.

 

안현은 다급하게 창을 찔렀다. 이유정은 공격을 막지 않았다. 단숨에 지근거리까지 다가와선 다리를 걸어 안현은 넘어트리려 했다. 안현은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던 것을 창을 땅에 박아 몸을 지탱했고,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이유정이 곡예 같은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한 뒤, 뒤에서 등을 발로 찼다. 안현은 버티려 손에 힘을 꽉 주었으나, 창은 허무하게도 땅으로 쓰러졌다. 이유정이 검으로 건드린 것이다.

 

안현이 넘어졌다. 이유정은 무방비한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뒤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이유정은 환호성마냥 그것을 음미했다.

 

" 사용자 이유정! 지금 대체 뭐하는 짓이죠? "

" 전에 했던 결판을 내는 것일 뿐이야. 왜 그래? "

" 그 이상 손속을 둔다면 제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

" 아아─ 그래? "

 

이유정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한 뒤 안현을 내려다봤다. 안현은 섣불리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이유정은 흡족하게 굴욕적인 자세로 있는 안현을 바라봤다.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들렸다. 그 중에서 한소영과 김유현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유정은 그런 김유현을 보고 어색하게 웃어보였고, 한소영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 동생의 클랜원인 것 같은데, 보시다시피 우린 원정 때문에 지쳐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안현이라는 사용자도 많이 지친 상태였으니 그만두는 게 어때? "

" 지쳐있다고요? 얘가? "

 

무식하긴 짝이 없는 놈이 지치다니. 이유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좋아하는 상대의 형에게 미워 보일 이유가 없었다. 이유정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하는 시늉을 했고, 안현은 그제야 살았다는 듯 다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 때, 하늘에서 누군가가 떨어졌다.

 

" 수현아? "

" 오빠? "

" 형! "

 

김수현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는 몰라도 김수현이 나타나자 이유정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김수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쭉 둘러보더니 이유정을 바라봤다. 이유정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그래. 저것이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한 표정, 태도. 그 어느 때도 당황하지 않고 모두를 이끈다. 저 마성의 카리스마에 모두 이끌린다.

 

" 이유정. "

 

김수현의 말하자 이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약 백여 명의 클랜원들이 이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머셔너리 클랜원들은 안현과 이유정이 싸울 때 말리지 못했다. 이유정의 마음이 어느 정도 공감갔고, 강해진 걸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에 검을 들이대자 상황은 바뀌었다. 모두 나서서 이유정을 막으려고 했고, 다만 김유현이 빨랐을 뿐이다.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이유정이 물러나고, 김수현이 나타나자 모두 김수현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유정은 분명 말없이 클랜을 나갔다. 그리고 지금 나타났다. 과연 김수현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안현은 솔직한 감정으로, 이유정이 공격적으로 그에게 행동한 것을 제하고, 이유정의 등급을 올렸으면 하는 기분이 있었다. 오랫동안 같이 지낸 동료였고, 친구였기 때문이다.

 

" 클랜에 다른 볼일이라도 있나? "

 

김수현의 말은 냉담했다. 그 말 한마디에 이유정이 무너져 내렸다. 울상인 표정으로 이유정은 크게 소리쳤다.

 

" 보, 보시다시피 전 강해졌어요! 이제 충분히 강해졌으니 돌아온 것일 뿐이에요. "

" 그런 것 같군. "

 

김수현은 안현을 쳐다봤다. 어떻게 싸웠는지는 몰라도 안현은 지친 상태는 아니었다. 회복력이 뛰어났기에 힘들기는 했겠으나, 지친 건 아니었다. 악마와의 전투 때 얻은 상처도 쉬는 것으로 어느 정도 회복했고 말이다. 그런 안현을 손쉽게 이겼다. 그것만으로도 강함을 입증할 수 있다. 김수현도 안현을 제압하려면 어느 정도라도 진심을 다해야했다. 전처럼 장난으로 싸울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클랜을 나간 게 강해지려고 나간 거란 말이냐? "

" 네! 바로 그거죠. 이제 강해졌으니 돌아온 거고요, 헤헤. "

 

이유정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약 백 명에 달하는 사람을 혼자 멈춰 세운 것 치고는 상당히 바보 같기도 했다. 그녀의 웃음을 시작으로 분위기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김유현은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친 다음, 앞을 바라봤다. 김유현이 생각하건대, 이번 일은 아무래도 동생의 여자관계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동대륙에 있을 때 클랜원 한 명이 나갔다는 이야기도 한 적 있다. 아마 그 일이겠지.

 

충분히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이다. 김수현도 그런 김유현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인지 표정을 풀고 이유정을 바라봤다. 확실히 강해졌다.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다시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행동은 거치지만, 그건 자신이 곁에 있으면 괜찮다고 김수현은 생각했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며 이유정을 제 3의 눈으로 관찰했다. 과연 얼마나 강해졌을까? 어떻게 강해졌을까? 이유정의 사용자 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 사용자 정보(Player Status) >

1. 이름(Name) : 이유정(4년 차)

2. 클래스(Class) : 여명의 검투사(Rare, Gladiator Of the Dawn, Expert)

3. 소속 국가(Nation) : 자유 용병(Free)

4. 소속 단체(Clan) : Mercenary(Clan Rank : S Zero)

5. 진명 • 국적 : 악마와 계약한 자 • 천사를 기만한 자 • 대한민국

6. 성별(Sex) : 여성(26)

7. 신장 • 체중 : 166.3cm • 54.5kg

8. 성향 : 광기 • 집착 (Madness • Obsession)

 

[근력 98(+6)] [내구 90] [민첩 96(+2)] [체력 94] [마력 92] [행운 0]

(잔여 능력치 포인트는 0포인트입니다.)

 

* 악마와 계약을 끝마친 상태입니다.(몸에 악마의 마법진이 새겨져있습니다.)

* 천사들을 속이고 기만했습니다.(천사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릅니다.)

 

< 특수 능력(1/1) >

1. 피에 젖은 마음(Rank : S Zero)

 

< 잠재 능력(4/4) >

1. 양손 단검술(Rank : B Zero)

2. 묘(猫) 족 체술(Rank : C Plus)

3. 백병전(Rank : A Plus)

4. 살인 기술 (Rank : A Plus)

 

김수현은 걸어가는 것을 멈추고 이유정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능력치는 실로 훌륭했다. 과연 같은 사람이 맞나, 라고 생각 될 정도로 높게 올라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나 김수현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고 진명을 봤을 때,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동안 고민을 한다.

 

" 헤헤, 오빠. 게다가 제가 엄청나게 대단한 걸 알았는데 말이죠. "

 

악마는 적이다. 사탄의 안배가 이런 것이었나. 손에 든 검의 정보를 본다. 마검(魔劍)이다. 김수현은 검을 꺼내들었다. 이유정이 놀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 오, 오빠…? "

" 이유정. 악마와 계약을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었어? "

"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 악마라니요. 호호, 오랜만에 봤다고 너무 농담을……. "

 

이유정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김수현이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현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 사용자 이유정. 머셔너리 클랜에서 무단으로 나갔으며, 지금은 악마와 계약마저 했습니다. "

 

김수현이 검이 하늘위로 높이 올라간다. 마치 사형 선고를 내리는 듯 한 행동은, 검이 아래로 내려오고, 김수현의 말이 끝났을 때 시작됐다.

 

" 지금부터 사용자 이유정은, 우리들의 적입니다. "

" 오빠! "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는 도중 김수현이 검을 휘두른다. 이유정은 무리 없이 받아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터지려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오빠가 원하는 대로 강해졌잖아! "

" 아무리 그래도 악마하고 계약을 하면 안 됐어. "

" 대체 그걸 어떻게…? "

 

이유정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왜? 어째서? 어떻게? 모든 게 의문이었다. 김수현이 왜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지. 그리고 죽일 듯이 움직이는지. 이유정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 속 깊이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치솟는 것 같았다. 왜 김한별은 되고, 자신은 안 된다는 말인가?

 

" 클랜원들은 어떻게 했지? "

" 나도 클랜원이잖아!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야? "

 

4명이서 있을 때가 좋았다. 걱정도 많고 힘든 시기였으나, 김수현이라는 지지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 시절은 더 바랄 수 없는 걸까. 이유정은 눈물을 흘리며 김수현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힘은 형편없었다. 감정에 치우친 방어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이유정의 검이 하늘 위로 높이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김수현이 목에 검을 가져다댔다.

 

" 미안하다. "

 

이유정이 이렇게 된 건 자신 때문인 것 같다. 김수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검을 움직였다. 이유정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 어째서 오빠가…. "

 

검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죽기 싫다. 살고 싶다. 그렇지만 김수현과는 싸우기 싫다. 멀리 안현의 표정이 보였다. 보기 싫었다. 한소영이 무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짜증났다. 땅에 박힌 마검이 마치 자신을 붙잡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살고 싶으면 잡아라고.

 

김수현이 그녀를 죽이려는 이유. 이유정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 유정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거란다. '

 

분명히 말했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한다고.

 

' 약속할게. '

 

약속도 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김수현은 잘못이 없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친절한 김수현이니깐. 통과 의례 때부터 도와준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을 버릴 리가 없었다. 문득 이유정의 눈에는 임한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촤악!

 

김수현의 검이 이유정의 어깨를 스쳤다. 갑작스런 행동에 김수현은 놀랐으나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이유정은 그것마저 피하고, 떨어져 있던 마검을 집었다. 공격, 방어. 김수현은 둘 중 하나를 고민하다 우선은 방어하기로 생각했다. 악마와 계약한 이상 어떤 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전부… 저것들 때문이야……. "

 

김수현의 곁에는 여자들이 많았다. 어떤 남자라도 질투할 정도로 여자가 많았다. 그 중에는 관계를 가진 여자도 있고, 안 가진 여자도 있었다. 안솔과 이유정은 후자에 속했다. 그렇기에 이유정은 스스로가 소중하다 생각했다.

 

저렇게 몸을 막 굴리는 년들과는 달리 안솔과 자신은 정말 소중한 동료여서, 품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김수현을 속이고, 타락하게 만드는 자는 그 후에 들어온 여자들이다. 이유정은 임한나를 향해 돌진했다. 방어하고 있는 김수현을 무시한 채 임한나를 향했다.

 

" 제 뒤로 오세요! "

" 너희들 때문이라고! "

 

안현과 이유정의 능력치 차이는 이미 상당하다. 높은 수준의 민첩으로 안현이 따라오지 못하는 동작을 보인다. 안현은 감으로나마 그 공격을 막으려다 실패한다. 김수현에게 버림받았다. 그 사실만으로 이유정이 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이유는 충분했다. 마검으로 안현의 심장을 노린다. 창날과 검날이 부딪쳤다. 하지만 근력 차이는, 안현의 죽음을 불러들였다.

 

" 안현! "

 

김수현이 크게 소리쳤다. 심장을 관통한 검을 뽑고, 그대로 임한나를 찌른다. 옆에서 마법사들이 마법을 영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정은 개의치 않고 임한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임한나는 뒤로 몸을 빼려다, 다리를 베이고 말았다. 몸이 기울어지고 쓰러지려는 순간, 이유정이 머리를 발로 찼다.

 

" 꺄아아아악──. "

 

멀리 비명이 들려왔다. 98의 근력은 상당하다. 벽마저 쉽게 부수는 근력으로 사람의 머리를 날려 보낸다.

 

이유정과 김수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갔어도 같은 클랜이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질 리가 없었다. 이유정은 분명 말투가 거친 여자였지만, 이렇게까지 미친 여자는 아니었다. 이유정은 그런 모두의 마음을 등진 채, 웃어보았다.

 

검에 묻은 피를 핥는 기행을 보여주면서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 모두 거리를 벌려! 내가 정면에서 맞선다! 악마를 상대했을 때처럼 진형을 갖춰! "

 

김수현의 명령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김유현이 인상을 쓰며 이유정을 쳐다봤다. 잔인했다. 사람의 급소만을 노린다. 효율적인 살인 법을 아는 것이다. 김유현은 손을 까닥거려 뇌전을 쏘아 보냈다. 이유정은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 너희들 때문이야! 전부 너희들 때문이라고! "

 

이유정은 철저히 머셔너리 클랜원들만 노렸다. 그것도 여자만 노렸다. 백한결이 모두를 보호하려고 앞장섰으나, 본디 천성이 착한지라 차마 이유정을 공격할 수 없었다. 이유정은 그런 백한결을 찔러 죽였다. 김수현이 그런 이유정을 막으려고 나섰다. 하지만 집요하게 붙어 있는 이유정을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비슷한 민첩 수치에 김수현은 번번이 공격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한소영과 김유현이 서로를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다간 피해만 커질 뿐이다. 이 이후에 사태에 대해선 자신들이 책임을 지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유정과 그 근처에 있는 클랜원을 같이 죽일 생각으로 움직였다.

 

" 너희들 때문에 오빠가 변한 거라고─!! "

 

오열하며 이유정이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김수현은 달랐다. 김수현은 손에선 피가 나고 있었다. 어찌나 검을 강하게 잡은 것인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 악에 받친 듯 한 이유정의 말을, 김수현이 받아쳤다.

 

" 지금 네 모습이나 봐!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

 

김수현이 검을 휘둘렀다. 이유정은 그걸 피하지 않았다. 팔이 잘리고, 한소영과 김유현의 공격이 이유정의 몸에 닿기 전, 이유정은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수현이 바라고 했기에, 약간이나마 남은 지성이 그녀를 보게 만들었다. 바닥을 적신 피웅덩이에 이유정이라는 여자가 비쳤다.

 

" 아──? "

 

온 몸 가득 피를 뒤집어쓴 채 웃고 있다. 이유정은 얼굴을 더듬었다. 그러나 팔이 잘려 그럴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김수현을 바라보자, 김수현은 다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유정은 피하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한소영과 김유현이 공격했다.

 

" 나는…. "

 

얼마 안 남은 머셔너리 클랜원들은 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자였다. 남자는 없는 걸까? 안현을 찾으려고 했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클랜에서 귀여움 받던 백한결은 어디에 갔을까? 보이지 않았다. 멀리 남다은이 치료받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 김수현을 노린다는 것만 빼면 괜찮은 동료였다. 말투가 거친 그녀를 받아줄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김수현이라는 이름하에 이유정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는 치료받고 있었다.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유정은 알 수 없었다.

 

" 그저…. "

 

이유정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수현이 그녀의 목을 베었다. 그녀의 목이 크게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처참하게 떨어졌다.

 

 

 

 

 

 

" 나는…. "

- 안 돼!

 

짧은 시간이었다. 화정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내내 답이 없다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김수현은 놀랐으나 이미 휘둘러버린 검을 멈출 수 없었다.

 

- 그녀의 몸에는 마법진이…!

" 그저…. "

 

이유정이 죽었다. 그토록 무섭게 날뛰던 사신(死神)이 죽었다. 머셔너리 클랜원들은 죽은 클랜원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다른 클랜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김수현은 힘들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버티기 힘들었다. 이유정의 속마음을 읽을 순 없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김수현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랜 시간 같이 지낸 동료였다. 살갑게 구는 것이 좋았다. 다소 말투가 거칠었으나 착한 아이였다. 그런 그녀를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줬던 스쿠렙프를 빼앗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미쳐버리고 말았다. 마검에 잠식당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을 죽였다. 마치 전에 있었던 마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김수현은 검을 아래로 내리고, 죽은 이유정의 몸을 바라봤다. 그 몸은 빛나고 있었다.

 

- 뭘 가만히 있는 거야! 당장 저 몸을 불태워!

" 무슨…! "

 

의아했다. 이유정이 아무리 강해진다 하더라도 단번에 저런 능력치의 상승은 있을 수 없다. 김수현의 눈이 재빠르게 이유정을 훑고 지나갔다.

 

『사탄의─.

『바알의─.

『루시퍼의─.

『벨제부브의─.

" 이, 이건? "

 

눈앞에 뜨는 아이템 정보에 김수현은 놀라 검을 휘두르는 것도 잊었다. 그 잠깐의 순간에, 이유정의 몸이 환하게 빛났다. 

 

" 오라버니─!!! "

- 이미 늦었어!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 빠르게 움직이라고!

 

화정이 크게 소리쳤다. 김수현은 그 즉시 뒤를 돌아 모두에게 소리쳤다.

 

" 모두 이곳에서 벗어………. "

 

폭발음이 주위를 덮었다. 전에 없던 큰 폭발이 일어났다. 서대륙의 죽은 인간을 제물로 삼아, 이유정의 손에 죽은 악마들을 제물로 삼아, 그리고 이유정을 제물로 삼아 폭발이 일어났다. 마법진의 효과는 굉장했다. 본디 악마의 마법이란 마이너스한 기운을 근본으로 발현된다.

 

죽음으로 인한 사기(死氣)와 물질적인 제물로 마법진을 증폭시킨다. 악마들의 몸은, 그것도 마력(魔力)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부위를 머금은 마법진은 당장에라도 터질듯이 예열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마법진의 숙주인 이유정이 죽었다. 큰 반발이 일어나며 폭발이 일어난다. 김수현은 온힘을 다해 방어막을 펼쳤다. 그러나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악마들이 김수현이라는 최강의 적 때문에 준비한 마법진이다. 하지만 이 마법진은 김수현을 겨냥하지 않았다. 악마들 중 그 누구도 ' 김수현을 해칠 순 없다 ' 라고 이야기한 사탄의 말을 부정한 악마는 없었다. 이건 김수현이 아닌, 김수현의 동료를 죽이기 위한 마법진. 사탄이 오랜 시간동안 준비한 마법진은 김수현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근처에 있는 적은 피해가 적다. 오히려 멀리 있을수록 피해가 강하다. 김수현은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화정의 힘을 끌어올리면서까지 폭발을 막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도시가 폭발에 잠기고, 마치 원래 이랬던 것처럼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6악마의 염원이 담긴 마법진이, 제물을 머금고 그렇게 발동됐다. 김수현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안솔은 근처의 생각보다 생각이 많은 여자였다.

 

이유정이 클랜에서 나갔다. 도망친 것이다.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EX급이면 어떻고, D급이면 어떻나. 어차피 등급은 별개다. 김수현의 애정은 모두에게 퍼져 있다. 그럼에도 나간 걸 보면 이유정답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안솔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는 EX급이니깐.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이다.

 

어떤 원정을 가도 김수현이 자신을 의지한다.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 행복한 것이다. 행운 능력치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높다고 해서 이렇게나 좋다니. 안솔은 행운 능력치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이유정이 나가고, 원정을 떠났다. 안솔은 불안했으나 김수현을 믿고 움직였다. 하지만 행운이 이 때문에 화난 것일까, 클랜원들 중 일부가 죽었다. 안솔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돌아왔다. 그러나 김수현이 또 다른 일이 있다고 원정을 이야기했다. 안솔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가지 않았다. 김수현도 이 점을 이해해줬다.

 

하지만 몇몇 클랜원들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간다고 했고, 안솔은 그들을 치료한 다음 클랜에 남기로 했다. 제갈 해솔과 김한별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 명을 제외하고 모든 클랜원이 원정을 나섰다.

 

그리고 안솔은 오늘따라 불길한 마음이 들어 클랜에서 나가 다른 곳을 돌아다녔다. 신전에 있기도 했고, 클랜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쯤 더 불길한 마음이 들어 아예 도시를 벗어났다. 도시를 벗어나면 위험했지만 멀리 가지 않으면 괜찮았다. 안솔은 그 때 갈등을 했다.

 

클랜으로 돌아가는 건 불길하다. 그렇지만 클랜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김수현이 죽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수현이 죽는 건 안 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김수현을 살리고 싶다. 안솔은 공포보다는 김수현을 택했다. 제 오빠인 안현이 죽는 것보다도 김수현을 신경 쓰는 안솔이기에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도시 안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서 김수현의 기운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스토킹한 안솔이라면 알 수 있는 기운이었다.

 

기쁜 마음에 달려가던 것도 잠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이유정이 보였다. 그 순간,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김수현이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안솔은 그만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이유정이 죽은 것을 안솔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유정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짧은 지식으로도 그게 폭발의 징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안솔이 김수현을 보고 소리쳤다. 김수현은 뭘 하고 있는 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오라버니─!!! "

 

김수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이유정을 바라보다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아직도 불길한 기분은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안솔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았다. 기도를 했다.

 

" 기…. "

콰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이 안솔에게 닿기 전, 안솔은 외쳤다.

 

" …적!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릴 때 일이었다. 눈을 감았음에도 느껴지는 환한 빛이 따뜻했다. 익히 아는 느낌이었다. 안솔은 김수현이 사는 것을 원했다. 천사에게 그렇게 빌었다. 오라버니가 부디 살아남게 해주세요. 그리고 욕심을 조금 넣어, 자신도 살기를 원했다.

 

김수현과 둘이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보다는 우선, 김수현이. 김수현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화아아악!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폭발 속에서 두 명을 감쌌다. 일전에 있던 빛과도 같았지만, 약간 달랐다. 안솔의 희망에 따라 빛은 김수현과 안솔만을 감싸고 있었다.

 

많은 사람을 감싼 게 아니었기에 빛은 매우 강했다. 폭발이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행운 능력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안솔의 힘이었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고. 폭발마저 더 느껴지지 않을 때.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업적!』

『사용자 김수현 외 1명이 사악한 악마들의 계획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악마들은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를 강력하게 만들어 제 편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사용자는 그것을 저지했습니다! 같은 인간이기에 이는 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해당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사용자 김수현 외 1명은────

『───

『──

『─

.

.

 

따뜻한 기운이 점점 사라지자 안솔은 눈을 떴다. 눈을 뜬 안솔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앞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앞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존재하는 게 아무 것도 있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건물들은 폭발에 휩쓸려 사라졌다. 안솔은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수현을 찾았다. 김수현을 찾는 건 쉬웠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김수현이었기 때문이다.

 

" 오라버니…? "

 

김수현은 답하지 않았다. 안솔은 놀라 그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심장에 귀를 가져다댔다.

 

두근!

 

안솔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김수현이 살았다. 기적으로 김수현을 살렸다. 다른 사람들이 죽었으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김수현이 살았다.

 

" 오라버니…! "

 

김수현은 크게 다친 상태였다. 화정의 힘과 기적으로도 폭발을 막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 소름끼칠 위력에는 알 수 없는 증오와 애정이 섞여 있었다. 흡사 이유정이 김수현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증(愛憎)의 마음. 안솔은 눈물을 흘렸다. 김수현은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있었다.

 

안솔은 그런 김수현을 끌어안고, 몇 번이나 울며 그를 불렀다.

 

 

 

 

 

 

 

사실 상 최강의 전력인 북대륙.

그리고 그 북대륙을 휘어잡던 클랜 세 개.

알 수 없는 폭발과 동시에 그 중 으뜸이라 불린 머셔너리 클랜의 EX등급 용병, 안솔과 김수현을 제외한 모든 사용자가 죽었다.

 

멀리 이 폭발의 피해에 닿지 않고 이 광경을 본 어떤 사용자는 ' 슬픈 폭발이 일어났다 ' 고 이야기했다.

 

김수현이 눈을 뜬 건 그 후로 하루가 지난 뒤이다. 눈을 뜬 김수현의 행보는 잔인하다, 고 밖에 말하지 못했다.

손속을 두지 않고 악마들을 처단한 그의 모습은 광인(狂人)이라 불릴 정도였다.

 

이윽고, 괴멸한 도시를 복구하고 김수현은 다시 클랜을 창설했다. 이름이 바뀌지 않은 머셔너리 클랜은 그렇게 다시 세워졌다.

그 후의 머셔너리 클랜의 행보는 실로 놀라웠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전략들로 김수현은 클랜원들을 나날이 강하게 만들었으며, 그도 더욱 강해지기까지 했다.

이윽고 사용자들을 모두 이끌고 지옥으로 갔을 때, 악마들은 이상하게도 있지 않았다. 모든 사용자들은 김수현이 두려워 악마들이 도망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남은 악마의 잔당들을 처치했다.

 

그리고 김수현의 말에 따라 단 두 명이 ' 제로 코드 ' 라는 절대 권능을 얻으러 원정을 나섰다. 김수현과 안솔. 머셔너리 클랜의 EX등급 용병.

어렵지 않은 원정 끝에 김수현과 안솔은 제로 코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로 코드 앞에 선 김수현은 그것을 획득하려 손을 뻗었다. 안솔도 마찬가지였다.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업적!』

『사용자 김수현 외 한 명은 제로 코드(Zero Code)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로 코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차원인 십천(十天)에서 탄생한 신명(神命)입니다. 법역과 수호의 지대, 그리고 약속의 신전을 거쳐 제로 코드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업적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업적입니다.』

『사용자 김수현 외 한 명에게 총 150,000,000 Gold Point를 부여합니다!』

『보상 결과를 수정합니다. 제로 코드를 강제 공략으로 획득한 게 아니라, 자격을 갖추고 정식으로 인정받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기존 Gold Point 보상이 열 배로 늘어납니다. 정정된 보상은 1,500,000,000 Gold Point이며, 사용자당 300,000,000 Gold Point가 부여됩니다.』

『사용자 김수현이 '정상(頂上)' 칭호를 획득합니다.(해당 칭호는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을 만족하면 발동합니다.)』

 

실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지만 김수현은 그 어떠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부터, 그는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안솔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했다. 안솔은 김수현이 힘들어하는 게 보기 힘들었다.

 

" 이게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제로 코드인가요? "

" 그래. "

 

김수현이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의 김수현은 1회차나 다름없었다. 능력치만 다를 뿐이지, 김수현은 여전히 1회차의 김수현이었다. 문득 김수현은 사탄의 말이 생각났다.

 

' 끝은 결국 이것이었군.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라… 이 얼마나 슬픈 말이 아닌가. '

 

운명은 피해갈 수 없다. 결국 김유현과 한소영은 죽었다. 과정은 달랐어도, 그들은 죽었다. 심지어 죽을 예정이었던 다른 이들까지 죽고 말았다. 결국 살아남은 건 안솔과 김수현뿐이었다. 김수현은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으나 안솔이 옆에서 그것을 막았다. 안솔이라도 살아남았다. 안솔이라도 살아남았으니, 움직여야 한다.

 

목적 없는 사명감이 안솔이라는 핑계를 대며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김수현은 안솔을 안았고, 안솔은 그런 김수현에게 안겼다. 김수현에게 남은 사람은 안솔밖에 없었다.

 

" 저, 소원 빌 게 생각났어요! "

 

안솔은 그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솔은 안솔이었다. 제로 코드를 획득한 뒤 안솔은 곧바로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는 제로 코드에게 말이다.

 

" 그래. "

 

김수현이 허공을 응시하며 안솔의 소원을 기다렸다. 김수현은 힘이 없었다. 2회차를 마쳤지만, 3회차까지 다시 갈 자신이 없었다. 사탄의 말이 어쩌면 맞을 지도 몰랐다. 악마들은 자신의 손에 모두 죽는다. 그리고 김유현과 한소영 또한 그들에게 죽는다. 운명에 벗어날 수 없다.

 

" 웅… 저는 말이죠……. "

 

안솔이 고민 고민하며 소원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수현은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싶었으나, 웃을 수 없었다. 폭발이 일어난 뒤로 웃은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당연할지도 몰랐다. 두 번이나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건.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도 그런 일을 겪었던 건, 정신을 상당히 피폐하게 만들었다.

 

" 오라버니가 괴로운 건 잊고 앞으로 둘이서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헤헤! "

 

제로 코드의 권능은 절대적이다. 안솔의 바람에 따라 제로 코드는 그걸 실행한다.

 

" 그렇게나 신경 쓰였어? "

" 오라버니의 일인 걸요! "

 

몇 년 만에 김수현은 웃을 수 있었다. 문득 김수현은 자신이 왜 지금까지 웃지 않았는지 까먹고 말았다. 뭔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로 코드가 있었다. 소원을 빌 수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안솔이 아직 비밀 상점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비밀 상점도 사용하지 않다니. 대체 자신이랑 다닐 동안 뭘 했단 말인가?

 

" 이제야 환하게 웃네요, 헤헤. "

 

김수현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안솔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왜 이럴까?

 

" 오라버니는 무슨 소원을 빌 거예요? "

" 글쎄. 난 뭐로 빌까? "

 

안솔의 질문에 김수현은 곧바로 다른 생각을 했다. 단 둘이서 지구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지구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김수현은 말하지 않았다.

 

" 비밀─! "

" 아앗! 도망치지 마요! "

 

아슬아슬하게 잡힐 것처럼 안솔을 약 올리며 김수현은 생각을 뒤로 미뤘다. 모든 게 끝이 났다. 그것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랑 같이. 비로소 홀 플레인이란 세상을.

 

" 아이, 정말! "

 

김수현은 안솔과 함께 클리어 했다.

 

 

 

 

ㅡ작품 후기ㅡ

 

메모라이즈를 내내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이유정이 생각보다 많이 불쌍한 캐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클랜이 등급제로 바뀌었을 때, 만약 제가 이유정이었으면 당장 클랜을 떄려칠 정도로 상황이 암울했다 생각됩니다.

안솔 같은 캐릭터가 아닌 이상, 김수현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깐요. 그렇게 생각해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한동안 아팠고, 글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 같아 줄여 쓰느라 전개가 이상해졌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여담을 적자면, 못 적은 부분이 있습니다. 소설이 너무 길어질까봐 말이죠.

 

리리스는 이 계획에 참여하지 않고, 안솔과 김수현 단 둘이 살아남았을 때 안솔에게 접촉을 시도합니다.

' 대 탕녀 ' 인 리리스는 ' 변태 성직자 ' 인 안솔과 궁합이 좋기 때문에 안솔을 타락시킨다... 라는 부분도 있었으나, 적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만의 결말이었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봐주신 분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아래에는 소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좀 적어놓겠습니다.

 

ㅡ소설 해석ㅡ

 

김수현을 죽이기 어렵다고 생각해 악마들이 계획을 짰다. 여기에서 ' 리리스 ' 는 의미 없는 짓이라 생각하고 참여하지 않는다.

 

악마들이 계획을 짠 근본적인 이유 : 인간 한 명에게 휘둘린 것이 굴욕적이다. + 악마답게 철수보다는 상대방 한 명의 파멸을 시도하겠다.

 

계획은 소설에서 본 것처럼 이유정을 이용해 김수현의 소중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각 악마가 죽고 나온 신체 부위 ( 마법진을 새긴 곳 ) 와 제물들을 받쳐, 흑마법으로 마법( 폭발 ) 을 일으킨다. - 고대 무녀의 각인처럼 신체에 마법을 새긴 것입니다.

 

이유정이 죽어 마법진이 발동했다. - 원작에서 타나토스가 한 행동과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유정의 죽음을 시작으로 발동되는 마법진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첫 원정에서 동료를 잃은 이유 : 원래 이유정이 근원을 해치우는 데 도움을 주는 상황이었으나, 이유정의 부재로 김수현이 혼자 해결. 그 여파로 클랜원들 일부가 죽음.

 

사탄의 말 : 

1. 대계의 예언처럼 악마들이 지는 것은 벗어날 수 없다.

2. 김수현은 1회차와 마찬가지로 결국 형과 한소영이 죽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마지막 안솔의 소원 : 김수현은 형과 한소영, 그리고 전 머셔너리 클랜원이 한 번에 죽은 사실을 잊음.

 

이 두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코멘트를 달아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하겠습니다.

 

level.3 사용자 태사냥

늘처음처럼

성별
직업
용병
성향
레벨
Lv.3
경험치
2000 EX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