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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정비 - 5)
level.6 지오니
  • 2016-03-08 02:23:37
  • 조회수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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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승현은 언월도를 가벼이 휘둘렀다. 먼저 사내의 기량을 알아보기 위한 초격이었다. 이에 사내는 여유롭게 언월도를 받아내었다. 

 

 "하, 형편없는 실력이군." 

 

 그의 실력에 사내는 이죽거렸다. 하지만 차승현은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다. 차분히 언월도를 들어 재차 공격에 나섰다. 사내는 검을 들어 막는 순간, 묵직한 힘을 느꼈다. 

 

 아무래도 근력은 사내가 소소하게 앞서지만, 검과 다르게 언월도는 양손 무기이다.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따져서 양손은, 한 손에 비해 두 배의 힘을 낼 수 있다. 

 

 차승현은 당황해하는 사내를 보며 매섭게 몰아쳤다. 사내는 어느 순간 자신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차승현의 공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내는 발을 헛디뎠는지, 순간 균형을 잃었다. 그 순간이 기회라 여겨, 차승현은 큰 공격을 준비했다. 

 

 강하게 원심력을 이용해 상대의 몸을 베어버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내의 노림수였다. 큰 준비 동작을 하려는 차승현에게, 반격의 공세에 나섰다. 

 

 차승현은 이에 다분히 언월도를 들어 막았다. 사내는 이것이 기회라는 듯, 차승현을 매섭게 치고 들어갔다. 

 

 차승현은 자신보다 높은 민첩을 바탕으로, 수없이 들어오는 사내의 검을 막기 급급했다. 

 

 "하, 처음 그 기세는 어디 갔나!" 

 

 사내는 수비에 급급한 차승현을 보며 비웃었다. 차승현은 발끈했지만, 그렇다고 틈을 보이지는 않았다. 

 

 싸움에 있어서, 냉정함이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사내는 그렇게 검으로 차승현의 방어를 무너뜨리려고 마력을 끌어모았다. 

 

 차승현도 이에 질세라 마력을 끌어모았다. 

 

 둘의 마력은 공터를 거칠게 휘몰아쳤다. 이건 대련이 아니라, 아예 상대를 죽이려고 하는 생사투로 변해갔다. 

 

 둘은 서로의 무기를 맞대며 치열한 싸움을 계속했다. 때로 한 사람이 상처를 입으면, 다른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입었고, 또다시 상처를 입히면, 매서운 반격에 상처를 입었다. 

 

 김덕필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이거 심각한 상황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둘의 싸움은 단순히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둘을 말리려고 하는 순간, 한목소리가 들렸다. 

 

 "사용자 허준영! 뭐하는 짓이죠!" 

 

 높은 고음이 그들 사이를 갈랐다. 허준영이라 불리는 사내는, 작게 혀를 찼다. 

 

 "아아, 그만두도록 하지." 

 

 김이 샌다는 듯, 사용자 허준영은 검을 집어넣었다. 이에 차승현도 어쩔 수 없이 언월도를 거두었다. 하지만, 언월도를 거두는 그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조금 더 시간 끌었으면, 졌다.' 

 

 냉정하게 허준영은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차승현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이에 차승현은 체력을 더 빨리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허준영보다 빠르게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그 분함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연차를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튼, 돌아가려는 허준영을 붙잡고, 훈계하는 여인이 있었다. 

 

 "허준영, 자꾸 이런 식으로 한다면,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어." 

 

 "제기랄…." 

 

 허준영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여인의 손에는 계약서로 보이는 종이가 팔랑팔랑 거렸다. 

 

 "치, 운 좋은 줄 알아라." 

 

 허준영은 차승현을 향해 한마디 하고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문득 김덕필은 여인의 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헉, 그 괄괄한 여자!" 

 

 "괄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여인의 시선이 확 김덕필에게 쏠렸다. 김덕필은 이에 고개를 돌렸지만, 여인은 김덕필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했다. 

 

 "당신은, 아까 그 남자 아냐!" 

 

 "아닙니다." 

 

 이에 김덕필은 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여인은 양손으로 팔짱을 끼고는 김덕필에게 성큼 다가갔다. 김덕필은 이에 조금씩 물러났지만, 여인은 그에 맞춰서 한 걸음씩 다가왔다. 

 

 "이제 저희 쪽 실력을 아시겠어요!" 

 

 "그쪽?" 

 

 "저 허준영이라는 자는, 바로 저희 일행이라고요." 

 

 여인은 대개 잘났다는 듯이 뻐겼다. 김덕필은 대체 무슨 말을 하지는 모르겠다. 

 

 "아아,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소리…." 

 

 "아까 말 잊었어요! 유적에 같이 데려가 달라고요." 

 

 그제야 김덕필은 여인의 말을 이해했다. 저 허준영이라는 사내의 실력은 굉장했다. 차승현을 몰아치는 것을 보았을 때, 어지간한 사용자들은 쪔쪄먹을 수준이었다. 

 

 "그건 일단 일행들의 의견을 모아봐야 합니다." 

 

 일단 자신이 리더긴 해도, 일행들의 의견을 모아야 된다는 말을 하며 시간을 벌려고 했다. 

 

 그러자 여인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흥! 저희처럼 강력한 사용자들도 어디 없어요, 당장 결정해요."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여인의 행동에, 김덕필은 눈앞이 아찔했다. 일단 자신의 앞에서 들이대는 여인의 향기가 느껴졌기에, 모태솔로 25년, 동정마법사인 김덕필은 그만 승낙하고야 말았다. 

 

 그 말에, 여인은 흥하는 콧소리와 함께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인과 자신은 같은 여관에 묵고 있다는걸, 그제야 깨달았다. 

 

 "제 이름은 이 효 을이라고요. 잘 기억하라고요." 

 

 "효을…." 

 

 문득 김덕필은 그녀의 이름을 곱씹었다. 사나이 김덕필, 25년 인생에 봄기운이 찾아오는 것일까…. 

 

 

● 

 

 

 이곳은 소환의 방이다. 고한솔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 소환의 방으로 찾아갔다. 

 

 "사용자 고한솔!" 

 

 우리엘은 날개를 퍼덕이며 기쁘게 그를 환영했다. 그녀의 호의는 내심 기분이 좋은지라, 김덕필은 간단하게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놀란 우리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한솔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받아본 것이다. 그 탓에, 우리엘의 날개는 맹렬하게 퍼덕거렸다. 

 

 그것은 기쁨의 표시였다. 

 

 자꾸만 퍼덕이는 날개에, 고한솔은 약간 짜증이 났지만 우리엘이 호감을 맹렬하게 표시하는지라 제지할 수는 없었다. 

 

 우리엘은 퍼덕이는 날개를 정리하고 차분히 제단에 앉았다. 이에 고한솔도 그녀를 따라 앉았다. 서로 간단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먼저 우리엘이 물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신 겁니까?" 

 

 "…조언을 구하고 싶군." 

 

 고한솔로서는 큰 결심을 하고 찾아 온 것이다. 고한솔의 마음은 사실 굉장히 조급했다. 고연주에게 뒤를 잡힌 이후로, 강해져만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10강에 있는 황금 사자 클랜 로드조차,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사이, 뒤를 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고연주에게는 뒤를 잡혀버렸다. 한소영처럼 정면승부에서 진 것이라면, 조금 더 노력해서 능력을 올리면 됐다. 하지만, 고연주처럼 암살자의 공격에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고한솔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갔다. 

 

 "무슨 조언 말입니까?" 

 

 우리엘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고한솔은 굉장히 조급해 보였다. 무뚝뚝함과 냉정함을 잃은 듯 보였다. 

 

 '무뚝뚝한 것은 사라져 좋지만….' 

 

 문득 우리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생겼다. 천사들과 연결이 되지 않는 이상, 사용자 고한솔을 관찰하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때로 자신과 친분을 유지하는 천사들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직접 고한솔이 찾아오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고한솔은 입을 열었다. 

 

 "…시크릿 클래스를 계승하는 것이 좋은가?" 

 

 "무슨 시크릿 클래스 말씀이십니까?" 

 

 우리엘은 궁금했다. 고한솔은 시크릿 클래스를 발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뚱맞게도 시크릿 클래스를 계승한다고 하니, 우리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에 고한솔은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파괴자(Destroyer)." 

 

 "!!!" 

 

 그의 말에, 우리엘은 소스라치게 놀랬다. 

 

 파괴자(Destroyer). 

 

 그것은 고한솔이 전회차에 악마들에게 얻은 클래스다. 천사들에게 가장 강력한 클래스인, 각성 시크릿 클래스가 있었다면, 악마들에게는 유일하게 파괴자라는 클래스가 있다. 

 

 이것은 사용자 설정에도 표시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클래스였다. 더군다나 그것은 클래스라는 설정을 뛰어넘어, 기존의 클래스에 더욱 힘을 보태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클래스를 계승하게 되면, 본래 천사들을 사용자들은 해할 수 없지만, 파괴자라는 클래스는 유일하게 천사들을 해칠 수 있었다. 

 

 "아, 안됩니다." 

 

 고한솔의 말에, 우리엘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지?" 

 

 독도 잘 쓰면 약처럼 쓸 수 있지 않나?

 

 이와 마찬가지로 파괴자 또한 그렇게 쓸 수 있지 않나?

 

 고한솔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우리엘로서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파괴자는 그야말로 천사들에게 있어서 천적에 가까운 직업이다. 천사의 조력을 끊고, 직접 악마의 백업을 받게 만드는 직업이다. 상극의 힘을 다루게 된 이상, 천사들에게 있어서 제1의 표적이 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엘은 파괴자에 대해 갈망하는 고한솔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 

 

 고한솔은 자신을 만류하는 우리엘의 모습에 갈등했다. 

 

 사실 고한솔은 일방적으로 통보하러 온 것이다. 본연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파괴자라는 직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고한솔은 그 클래스를 계승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길을 벗어나, 부랑자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사실을 간파한 우리엘은 필사적으로 고한솔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고한솔, 그건 당신이 이때까지 해 온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겁니다." 

 

 "그래도 필요하다. 더는 패배를 겪기 싫다." 

 

 "안됩니다. 정말 안됩니다." 

 

 문득 우리엘의 어조는 애원에 가까웠다. 짜증이 난, 고한솔은 뒤돌아 나서려고 할 때, 자신의 뇌리를 강타하는 우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다시 당신이 부랑자가 되겠다는 거라고요!" 

 

 다시…부랑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 말에 발걸음이 우뚝 섰다. 포탈을 통해 나가려고 하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우리엘이 보였다. 

 

 문득 그 손을 붙잡았다. 포탈에 반쯤 걸친 몸을 내뺐다. 이 문을 나서게 된다면 기로에서 자신이 다시 부랑자의 길을 걸을 것 같았다. 

 

 "다시 설명해봐." 

 

 "아아…." 

 

 문득 자신의 손을 붙잡은 고한솔의 손은, 그토록 차갑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엘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파괴자(Destroyer), 그것은 악마들이 설정을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설정말인가…." 

 

 하지만 파괴자를 얻었다고 해서, 설정에 벗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정의 백업을 더욱 맹렬하게 받았었다. 

 

 이에 반론을 제기하자, 우리엘은 설명했다. 

 

 "설정이라는 것은 일종의 서포트 역할을 하는 것도 분명 있지만, 이것은 설정이라는 이름하에 보호되었던 것을 모조리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종의 오버 클럭과도 것이다. 

 

 안전장치가 사라지게 되면 힘은 분명히 올라가게 되겠지만, 그것은 사용자의 수명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한다. 

 

 "사용자 고한솔은 전회차에서 충분한 능력치, 뛰어난 잠재능력을 갖췄기에 이 페널티를 상쇄했지만, 지금 그것을 얻는다는 것은 희광반조처럼 아예 마지막 힘을 뿜어내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 

 

 교활한 놈들이었다. 

 

 악마들을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교활한 녀석이었다. 

 

 티르빙을 제압하지 못하면, 피에 미친 광인이 되었을 것이고, 충분한 잠재력과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파괴자라는 직업은 일회성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려는 계획이었다. 아니, 내가 그것을 얻지 않았더라면 악마의 조력자들은 그런 신세가 되어 소모품처럼 다루어졌겠지. 

 

 문득 이 세상에 천사고 악마고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 천사는 자신을 분명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근데 왜 이런 정보를 내게 가르쳐 주는 거지? 

 

 "전 사용자 고한솔이…." 

 

 문득 걱정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엘의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한솔에게 충분한 의미가 전해졌다. 

 

 "걱정이라…."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감정이다. 

 

 부랑자들은 다들 자기 할 일에 바빴지, 동정, 연민 같은 싸구려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 

 

 문득 고한솔은 자신의 돌아오고 나서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잖아요….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헤헤, 나비가 참 예쁘지 않아요? 

 

 

 사용자 고한솔이 걱정됩니다. 

 

 

 ……. 

 

 

 "하…." 

 

 왜 몰랐을까, 자신은 이미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변해갔다는 것을. 그리고 힘이라는 것에 절대적으로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힘이 절대적인 진리였던 부랑자들과 다르다. 고한솔은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엘을 뒤로 한 체 포탈로 걸어갔다. 그의 모습에, 우리엘은 걱정을 하며 일어났지만, 그녀의 귓가에 고한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다." 

 

 "네?" 

 

 고한솔은 포탈로 다시 홀 플레인으로 돌아가 버렸다. 우리엘은 고한솔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사용자 고한솔…." 

 

 그는 달라졌다. 자신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냉혹하고 무자비했던 고한솔의 모습은 조금은 사라졌다. 비록 그 비율이 10%도 되지 않을지 몰라도, 고한솔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문득 우리엘은 부랑자들도 사실은 평범한 사용자들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랑자들의 수장이었던 고한솔조차 조금씩 변해가는데, 그 밑에 있었던 자들도 변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우리엘의 머릿속에는 고한솔의 음성이 계속 반복해서 울렸다. 

 

 '고맙다.' 

 

 처음 듣는 그의 감사에 우리엘은 행복에 빠져, 날개를 퍼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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