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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 (통과의례 - 5)
level.6 지오니
  • 2016-01-05 09: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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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잠에서 일어난 것은 고한솔이었다. 아직 새벽이 완전히 지나지 않았지만, 워낙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르다 보니, 잠을 최소한만 자는 습관에 3시간이 생겼다. 사람이 잠을 자는 것은 원래 습관과도 같은 일이라고, 고한솔은 3시간만 자도 다른 사람들이 푹 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한솔이 잠에서 깨자마자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이틀을 걸쳐 몸을 무리하게 움직였기에, 몸은 여기저기 잔잔한 근육통을 호소하였다. 비록 거슬리기는 했지만, 한동안 스트레칭을 하자 몸이 점차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문득 불침번을 서고 있는 차승현은, 연신 졸린 지 눈을 비볐다. 

 

 "가서, 자라." 

 

 "네? 하지만 아직 교대할 시간은 안되었는데요?" 

 

 "빨리 바꿔주는 거다." 

 

차승현은 워낙 졸린 탓에, 간단한 인사만 한 후 그는 침낭에 누웠다. 고한솔은 불침번을 넘겨받고는 조용히 어둠을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어둠을 꿰뚫고 적을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신체는 0년 차 고한솔이다. 0년 차, 고한솔은 그저 잠재력이 좋은 예비 사용자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할 것도 없는지, 고한솔은 마력을 잔잔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력감지를 발동했다. 

 

마력들은 마치 그물처럼 얼기설기 서로 엮어가며 인근 100m 이내의 모든 것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비록 완전하게 모든 것을 감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간에 위협될만한 덩치 있는 생물들은 모조리 감지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눈을 뜨는 것이 오히려 마력감지에 방해되어 조용히 자리에 앉은 체 마력 감지를 하였다. 

 

누가 보면, 조용히 명상을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수십 분을 조용히 마력감지에 할애했을 무렵, 누군가 침낭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침낭의 위치를 보건대, 그 사람은 바로 유현아였다. 유현아는 처음 잠을 깨었을 때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려고 했지만, 연신 잠을 청하여도 잠이 오지를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난 유현아는, 모닥불 옆에 앉아 명상하는 고한솔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주무세요?" 

 

 "아니." 

 

 "아…." 

 

유현아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계속 꼼지락거리며 고한솔의 옆에 앉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 별건 아니고…." 

 

혹시 실례되는 질문일지 몰라, 유현아는 질문하기를 몇 번 주저했지만 결국 물었다. 

 

 "왜, 그런 딱딱한 말투를 쓰세요?" 

 

 "……."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유현아는 실례인 질문이라 여겨 짧게 사과를 하려고 하는 찰나, 고한솔의 목소리가 들렸다. 

 

 "습관이다." 

 

 "네?" 

 

 "그냥, 습관이라고만 알고 있어라." 

 

 "아, 네." 

 

그렇게 둘의 대화는 끊겼다. 유현아는 무언가 화제를 잡아 대화하고 싶은지 연신 명상 중인 고한솔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그렇게 싸움을 잘하세요?" 

 

 "살기 위해서지." 

 

 "누가 헤치기라도 하는 건가요?" 

 

 "글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기른 거다." 

 

다시 대화는 끊겼다. 유현아는 자꾸만 그를 향해 말을 걸었지만, 고한솔은 짧게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혹은 애매한 말로 그녀에게 답했다. 계속되는 질문에 고한솔은 짜증이 났는지, 화를 냈다. 

 

 "잠을 안 자나?" 

 

 "잠이 안 와서요." 

 

 "그럼 좀 떨어지지그래, 자꾸 신경 쓰이게 하지 마라." 

 

명백한 축객령에 유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그냥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계속 말을 걸었던 건데….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의 모습에, 유현아는 결국 다시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고한솔은 이제야 좀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마력감지에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현아가 자리에 눕자마자, 한 명의 사람이 또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바로 김형만이었다. 그는 연신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밤이라 추운지 모닥불 옆에서 천천히 모닥불을 쬐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분의 시간이 지나자, 김형만은 말을 걸어왔다. 

 

 "자네, 자나?" 

 

 "안잔다." 

 

 "근데 왜 이리 말이 짧은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손윗사람인데 좀 예의를 갖추는 게 어떤가?" 

 

 "……." 

 

그 말에 조용히 감았던 눈을 떴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는 김형만의 모습에, 그냥 무어라 쏘아붙이려고 했던 말을 삼켰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게 되면 다시 헤어질 사람들에 그냥 자존심을 굽히고 존대를 해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능력이 된다면 존대를 하지." 

 

 "원…." 

 

그는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자네도 한대 필 텐가?" 

 

 "사양하지." 

 

김형만은 담배 한 대를 꺼내어 태우기 시작했다. 

 

 "이제 담배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나마 이곳에 끌려오기 전에 한 갑 사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줄 생각도 못 했지." 

 

 "뭐, 홀플레인에 들어서게 되면 담배 정도는 흔하게 구할 수 있을 거다." 

 

 "홀플레인?" 

 

 "통과의례를 지나면, 도착을 하게 되는 대륙의 이름이다." 

 

허허, 통과의례가 끝나면 그런 곳으로 가게 되는구만.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구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김형만은 차분히 담배를 태웠다. 담배 연기가 그의 목덜미를 타고 폐부를 가득 채웠다. 다시끔 숨을 내쉬었을 땐, 담배 연기는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헌데, 난 이제까지 살면서 좀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 

 

그는 어깨가 가려운지 어깨를 슬슬 긁으며 말했다. 

 

 "자네처럼 사연이 있는 애들도 많이 봤어." 

 

하하, 그렇다고 걔네들이 싸움을 자네처럼 잘하는 건 아니구 말이야. "하지만 사연이 있다고 해서 그걸 감춰두고 내버려 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건, 세상을 살다 보니 좀 느끼겠더라고." 

 

그러니까, 자네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해결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자네가 아니니 자네의 사연도, 자네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 사연에 잡아먹히지는 말게나. 그는 그 말을 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동생을 보는 거 같아서, 나이 많은 아재의 조언이라고만 생각해. 뭐, 저번에 데드맨 무리를 처리해 준 답례라고 생각해도 좋아." 

 

 "…알았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자리에 누웠다. 

 

고한솔은 그저 귀찮았다. 기껏해야 하루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인연들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서로 조언하며, 격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서로 원하는 것만 들어주고, 헤어지면 그만일 것을…. 

 

밤은 고한솔의 심란한 마음과 상관없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한솔이 불침번을 다음 날 아침까지 섰다. 

 

모두 꾸벅꾸벅 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차승현은 빠르게 자신의 침낭을 정리하고, 천천히 몸을 풀었다. 그러던 중 나와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다. 

 

 "하하, 잘 주무셨는지요?" 

 

 "……."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그제야 그는 자신이 실례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고한솔은 자신의 뒤를 이어 불침번 말번초를 끝까지 섰다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한동안, 뻘쭘함을 감추지 못하던 차승현은 작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불침번 말번초이신걸 깜빡했네요." 

 

 "괜찮다." 

 

고한솔은 그에게서 신경을 껐다. 아무튼, 고한솔은 사람들이 천천히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사실 이러한 공터에서 무방비하게 자는 것은 지극히 위험했기에 기상하는 것이 옳지만, 고한솔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최소한 이곳 괴물들의 경우,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고한솔의 감지를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였고, 고한솔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한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감지를 하루종일하고 있어도, 피로감이 없었다. 그만큼 능숙하기도 했고, 마력량이 압도적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와 마력량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똑같은 숙련도를 지닌 고한솔이 50m가량을 감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금씩 잠에서 일어났다. 

 

 "하암…." 

 

사람들은 자신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현아는 레스트 포인트에서 가져온 물과 인스턴트 수프 가루를 이용해, 간단한 수프를 끓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공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한솔은 멍하니 그들을 지켜보았다. 문득 자신이 도와주어야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지켜만 보았다. 어차피 헤어질 건데 무슨 호의가 필요하단 말인가.

 

"자, 모두들 수프가 됐어요." 

 

유현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식기를 꺼내어, 유현아에게 다가갔다. 

 

 "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세요." 

 

 "……." 

 

뭐, 어떻게 먹으라는 말이야. 

 

고한솔은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랐다. 그의 반응에, 유현아 또한 땀을 삐질 흘렸다. 간단히 농담으로 이야기했지만, 마치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를 보는듯하다. 

 

 "그, 그냥 맛있게 드세요." 

 

 "알았다." 

 

고한솔은 자신의 몫을 받고는 조용히 어디 앉아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대로 적당한 속도로 완급을 조절해가며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양이 적은지 수프를 더 받았지만, 고한솔은 자신에게 받은 수프만 해도 허기를 채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 게 느릿느릿하게 수프를 먹는 사이, 유현아는 냄비째로 들고 와, 고한솔에게 국자를 건네었다. 

 

 "다른 사람도, 다 부족하다고 한 번씩 왔는데, 부족 하실 거 같아, 왔어요." 

 

 "쓸데없는 참견이군."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시도에 결국 수프를 더 받았다. 

 

그제야 그녀는 만족했는지, 자신의 수프의 몫의 수프를 들고 갔다. 하지만 그 양은 자신의 받은 수프의 양보다, 훨씬 작은 양이었다. 유현아는 자신의 몫을 떼어, 고한솔에게 준 것이다. 한숨을 쉬고는 그저 수프를 먹었다. 놀랍도록 여전히 착하고, 멍청한 여자였다. 

 

 

● 

 

 

 "그래, 혹시 자네들은, 우리와 같이 움직일 생각은 없는가? 우리가 최소한 폐는 안 끼친다고 말할 수는 있네."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거 같군." 

 

명백한 거절이다. 그 말에, 아쉬운 듯 김형만은 입맛을 다졌지만, 어차피 못 먹는감 찔러는 보자는 심정이었는지,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 일행은 헤어졌다. 무언가 불만인 듯, 이가인은 꿍한 표정이었지만, 고한솔은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왜, 그들과 움직이고 싶은 건가?" 

 

 "아니요, 그런 건 아니지만…." 

 

나중에 만날 때가 되면, 볼 수 있을까요? 

 

 "아마 큰일이 없는 한, 다시 만날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진, 일행들을 떠올리며 각자 자신의 길을 나섰다. "그런데 형만이형, 왜 더 권유하지 않는 거죠?" 

 

차승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유현아도 거기에 합세했다. 

 

 "네, 나쁜 사람 같지는 않는데, 저희도 그를 따라가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닐까요?" 

 

 "아서라, 괜히 녀석을 귀찮게 했다간, 오히려 지금까지 쌓아온 호감마저 무너뜨릴 판이다." 

 

더군다나 저런 실력이면 어디서 죽지도 않을 실력일뿐더러, 살아만 있다면 어디선가 만날 팔자다. 

 

그 말에, 유현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그와 다니며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무튼, 그들은 각자 갈 길을 나섰다. 

 

비록 오늘에서야 헤어지지만, 후일 만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이 되었다. 

level.6 사용자 지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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